경배 찬양 CCM - 성육신하신 하나님 가장 사랑스럽네
1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후 인류 가운데 사시며
인류의 타락과 그들의 삶을 보셨네
육신 되신 하나님은
인류의 무력함, 측은함, 슬픔을 더욱 깊이 느끼시네
육신 되신 하나님은 인류의 처지를 더욱 이해하시고
육신의 본능으로 그를 따르는 자를
더욱 염려하시네 염려하시네
2
하나님은 경영하여 구원하시려는 인류를
가장 중요히 여기시며
그들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시네
많은 대가 치르신 하나님에게 상처를 주고 거역하지만
후회와 불평 없이 멈추지 않고 사역하시며
절대로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네
육신 되신 하나님은 인류의 처지를 더욱 이해하시고
육신의 본능으로 그를 따르는 자를
더욱 염려하시네 염려하시네
3
하나님은 사역을 멈추시지 않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네
사람이 언젠가 그의 부르심에 깨어나
그의 말씀에 감동받을 걸 아시며
그가 창조주이심을 알아보고
그의 곁으로 돌아올 걸 아시기 때문이라네
육신 되신 하나님은 인류의 처지를 더욱 이해하시고
육신의 본능으로 그를 따르는 자를 더욱 염려하시네
육신 되신 하나님은 인류의 처지를 더욱 이해하시고
육신의 본능으로 그를 따르는 자를
더욱 염려하시네 염려하시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찬양 ccm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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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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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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הסרט הטוב ביותר 'המתנה' קטע (6) – איך נוכל להבחין בקולו של האל? (2)
"מי אשר אוזן לו, ישמע נא את אשר הרוח אומרת לקהילות" (חזון יוחנן ב' 29). האם שמעתם את רוח הקודש מדברת אל הכנסיות? האם הדברים הנאמרים על ידי האל הכול יכול וישוע אדוננו נאמרים מרוח אחת, ממקור אחד? סרטון זה יגלה לכם זאת!

https://youtu.be/GbnabSPem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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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에서 얻어야 할 인생 깨달음

 2019년 04월 27일
  

우연한 기회에 휴대폰에서 역사 이야기를 한 편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장군 중 하나인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더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던 길에 병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죽음 앞에서 그는 병사들에게 세 가지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세 가지 유언은 자신의 관은 반드시 자신의 의사가 옮기도록 할 것, 관을 무덤으로 옮기는 길에 금은보화를 잔뜩 뿌려 놓을 것, 두 손을 관 밖에 내놓을 것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알렉산더가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세상 사람에게 세 가지 교훈을 남기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우선 의사가 관을 옮기게 함으로써 그 어떤 의술도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없고 의사가 생사를 결정할 수 없음을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살아생전에 돈과 부를 좇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추구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저 시간 낭비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수래공수거, 즉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알렉산더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렉산더는 아쉬움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람에게 평생 돈을 좇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아무리 많은 재물도 사람의 목숨을 되살릴 수는 없으며 더욱이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겨 주고 떠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알렉산더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고 나서야 이 도리를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목숨입니다. 목숨이 사라진다면 아무리 많은 돈도 한낱 휴짓조각에 불과하며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알렉산더가 자신의 체험을 통해 후손에게 자신과 같은 우를 범하지 말라고 교훈을 주었지만 슬프게도 후손들은 그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한 채 알렉산더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살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더 많은 부를 누려 양질의 삶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https://reurl.cc/VaX4X5

철이 든 후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매일 돈 버느라 바쁘신 뒷모습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쓰러졌고 그렇게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별세에 가족들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한순간에 가버리다니.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뭘 한담? 사람이 죽었는데 그 많은 돈이 다 무슨 소용이야? 결국 빈손으로 돌아갈 것을….”이라며 개탄했습니다. 아버지의 별세에 저는 마음 아파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남았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아등바등하며 돈을 버셨고 아끼고 아끼며 평생을 바쁘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로 많은 아쉬움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체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정말 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https://reurl.cc/8lnNWg

그러다 운 좋게도 저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돈과 명성과 부를 좇는 데에 인생을 쓴다. 그리고 그것을 목숨을 건지는 지푸라기로 삼고 유일한 의탁으로 삼는다. 그것만 있으면 영원히 살 수 있고 죽음도 오지 않을 것처럼 꽉 움켜쥔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멀리 있고 죽음 앞에서 얼마나 힘이 없는지,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스스로가 얼마나 외롭고 무력한지를 깨닫게 된다. 또 사람들은 돈이나 명성과 부로 목숨을 교환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부자여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똑같이 가난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없고, 명성이나 부가 죽음을 면케 하지 못하며, 둘 중 어느 것도 단 1분 1초를 더 살게 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익히는 다양한 생존의 기술로 물질적 편안함은 충분히 얻을 수 있지만, 그것들이 마음의 진정한 평안과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꾸만 방향과 통제력을 잃게 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놓치게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죽음을 대면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이렇게 해서 삶은 망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저는 깊은 사색에 잠겼습니다. 우리는 정말 돈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세상에 믿을 것은 돈뿐이며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린 매일 정신없이 살며 돈이나 명예와 관련 없는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도 가끔은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요?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평생 돈만 좇으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기만 한 채 해법을 찾기도 전에 사악한 사회의 흐름에 휩쓸려 계속 바쁘게 뛰어다닙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비극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돈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흐름에 휩쓸려 악착같이 돈을 벌고 끝내 몸이 버티지 못해 쓰러지고 나서야 후회하고 두려워합니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가 돼서야 깨달으면 너무 늦지 않겠습니까? https://reurl.cc/8lnNWg

우리는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우리를 돈의 족쇄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배치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돈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은 사탄이 우리에게 ‘돈이 최고’,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등 황당무계한 생존 법칙을 주입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릇된 논리가 우리를 미혹하고 타락시켜 우리는 돈을 삶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린 남들과 다투고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영혼의 깊은 곳도 점점 공허해지고 고통스러웠으며 끝내 돈 때문에 몸까지 상했습니다. 심한 경우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 자신의 목숨을 짓밟기도 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평생 얼마의 부를 쌓을 수 있고 얼마의 재산을 가질 수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이런 생존 법칙으로 우리가 돈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마음속으로 과거 황당한 인생관을 모조리 벗어 던지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해야만 돈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공허함과 고통스러운 삶에서 헤어나와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은 많은 부와 함께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했습니다. 사탄이 욥을 꼬드기고 시험할 때 욥의 모든 재산은 강도에게 약탈당했고 자식들도 재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욥도 온몸에 악창이 나서 고통을 참기 힘들어했었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을뿐더러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욥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욥은 재물이 자신의 힘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해 놓으셨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뺏어 가시건 거둬 가시건 욥은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했고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며 사탄에게 치욕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하나님께는 영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욥을 칭찬하시어 재산과 수명을 배로 늘려 주셨고 욥에게 마을에서 가장 예쁜 자녀도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바람 속에서 욥에게 나타나시어 친히 말씀하셨고 하나님을 향한 욥의 인식은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욥은 평생 아쉬움 없이 살았고 죽을 때에도 삶에 만족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욥의 간증을 통해 우리는 평생 돈을 좇아도 아무 의미 없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추구하며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만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 수 있으며 진정한 즐거움과 해방감,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미 있는 삶입니다. https://reurl.cc/VaX4X5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합니다

2012년 7월 21일 밤, 우리가 사는 지역에 보기 드문 특대 수재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저의 진실한 경력과 본 것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그날 저와 남편은 언니네 사료 공장을 지키게 되었는데 밤에 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우리 둘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 45분에 형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수지 물을 방류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여기는 몽땅 잠기게 되니 빨리 도망가요!” 그때 저는 멍해져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부르기만 할 뿐 하나님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전동자전거, mp3와 메모리카드를 챙기기에 급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저는 사료실에 가서 전동자전거를 끌고 나왔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서 하나님 말씀 책을 챙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아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 앞까지 타고 왔을 때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앞이 보이지 않아 저는 큰물에 떠내려온 아스팔트 조각에 부딪쳐 전동자전거와 함께 물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물에 떠내려가도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만약 살아남게 하신다면 이후부터 본분을 잘 하겠습니다.’ 그때 저의 한쪽 신발은 이미 물에 떠내려갔고, 저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고속도로 근처에 이르러 보니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주변이 철망으로 둘러싸여있었던 것입니다. 지나갈 수가 없으니 다시 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른 한쪽 신발마저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물은 이미 저의 허벅지까지 차올랐습니다. 저는 되돌아 가려고 세 번째 시도를 했고 속으로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때 다른 돼지농장에서 한집 식구 세 사람이 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그들과 같이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갈 준비를 했습니다. 이때 저의 남편도 거기에 도착하여 도구로 철망을 끊고 있었습니다. 저는 맨 먼저 맨발로 철망을 넘어 고속도로에 올라갔습니다. 당시에 고속도로 남쪽은 물굽이에 둘러싸인 지역인데 북쪽으로 물이 흘렀고 북쪽은 큰길인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우리를 중간에 끼워넣었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바로 고속도로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 오르고 나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는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강철공장이 있었는데 강철공장 담장 밖으로부터 2m 남짓한 길을 사이에 두고, 바로 우리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담장 안의 물은 1m 정도로 깊어 공장의 채색 강철 기와집도 둥둥 떠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 제가 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행한 탓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만약 물이 북쪽으로부터 덮쳐 왔다면 그날 새벽 2시쯤에 우리는 떠내려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은 남쪽 담벽 모퉁이를 뚫고 내려가 아래에 위치한 돼지농장이 물에 잠긴 것입니다. 이때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전능을 보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앞에서는 재난도 비켜 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고속도로 터널에서 3시간 남짓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음식 봉투를 열어보았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가 하나도 젖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에 전동자전거도 물에 넘어지고 전동자전거 충전기도 젖고 다른 물건도 다 젖었지만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만은 전혀 손상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료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본 상황은 더욱더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료공장 마당에는 간밤에 내렸던 빗물만 고여있었을 뿐 물이 얼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앞쪽 옥수수 밭도 잠기고 뒷쪽 옥수수 밭도 더 깊이 잠겼지만 사료공장에는 물이 얼마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이번 수재를 통해 저의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돈이 만능이라고 하지만 재난이 임할 때는 돈이 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저의 진정한 주님이십니다. 저는 더 이상 돈을 추구하지 않고 사료공장을 그만두고 복음 사역에 뛰어들 것입니다. 저는 그날로 우리 고모와 어머니 그리고 올케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저의 경력을 듣고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이전에 저의 어머니와 올케는 줄곧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핍박해 왔고 제가 4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믿지도 않았었습니다. 이때 저는 더욱 하나님의 전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전에는 저를 핍박했지만 지금은 핍박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복음을 전할 때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감히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경력을 통해 더 이상 움츠리지 않고 있는 힘껏 저의 경력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재난과 시련 속에서 제가 하나님의 구원과 가장 진실한 사랑을 보고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 하나님을 간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012년 8월 11일 北京市 穩重

홀로 간 산에서 말벌에게 46방 쏘인 후 살아난 기적

그녀는 혼자 산 정상에 가서 약초를 캐다가, 갑자기 나타난 말벌 떼에 수십 군데 쏘였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험에서 벗어났을까요?

작별하다,외롭다
「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 교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제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제를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제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9년간 이어 온 고부 갈등 — 다시 되돌릴 방법을 찾다

고부간의 갈등은 많은 사람들의 골칫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그 답을 알려 드립니다.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권세를 창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겨울에 주인집으로 이사왔습니다. 주인집 뒷마당은 매우 난잡했고 시들어 죽은 각종 잡초와 볼품없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복숭아나무는 가지가 앙상하여 모양새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복숭아나무 너무 못생겼네! 열매나 맺을 수 있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복숭아나무도 싹이 돋아나고 파릇파릇해지더니 후에는 기름진 잎사귀로 가득하여 생기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에 대해 약간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복숭아나무는 꽃이 피고 서서히 열매를 맺었습니다. 가지에 달린 복숭아를 보니 작고도 못난 것이 마치 벌레 먹은 듯했습니다. 쭈그렁복숭아를 보는 순간 저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복숭아나무야, 복숭아나무야. 네가 만약 싱싱한 복숭아를 맺지 못하면 너의 가치를 또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니?’ 복숭아나무에 대한 저의 기대는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시선은 빨갛게 익은 복숭아에 끌렸습니다. 주렁주렁한 열매는 햇빛의 자양을 받아 어느새 그렇게 크고 빨갛게 열렸는지 전의 그 “쭈그렁이” 모양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복숭아는 바람에 온몸을 흔들며 주위의 모든 것과 인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탐스러웠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서 저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의 창현 하에 이 세계는 조금씩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의해 풍성해졌다. 그것은 혼탁하고 어둡던 데에서 밝고 환해지고, 몹시 고요하던 데에서 생기발랄하고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피조된 만물 중에서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작은 것에서 미소한 것까지 어느 한 가지도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매 한 가지 피조물마다 그것의 특유하고 고정된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 그것의 형식이나 구조가 어떻게 서로 다르든지 어쨌든 조물주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서 생존한다. 어떤 때 사람이 한 가지 곤충을 보고 그 곤충이 아주 못생겼으면 “이 벌레 왜 이렇게 못생겼어? 이렇게 못생긴 벌레는 절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게 아니야. 하나님이 절대 이렇게 못난 것을 만드실 리 없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너무나 우매하다! 마땅히 “이 벌레는 아주 못생겼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거니 틀림없이 그것의 독특한 용도가 있을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은 그가 만들려는 각종 생물들에게 다양한 생김새가 있게 하고 다양한 기능과 용도가 있게 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없다. 외형에서 내부 구조까지, 생활 습성에서 제각기 차지한 위치까지 모두 각기 다르다. 소는 소의 생김새가 있고 당나귀는 당나귀의 생김새가 있고 사슴은 사슴의 생김새가 있고 코끼리는 코끼리의 생김새가 있다. 말해 봐라, 어떤 것이 가장 잘생겼고 어떤 것이 가장 못생겼는가? 어떤 것이 가장 유용하고 어떤 것이 가장 존재할 필요가 없는가?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생김새를 좋아하지만 코끼리로 농사짓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사자와 범의 생김새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만물 중에서 가장 위풍있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그것들을 애완동물로 삼아 기를 수 있는가? 어쨌든 만물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 조물주의 권세에 순종하는 즉 조물주가 만물에게 제정해 준 법칙에 순응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 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며, 조물주의 본의에 대해 구하고 순종하는 이런 태도를 품어야만이 진정 조물주의 권세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니 사람이 또 흠잡을 이유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모두 그것의 특유한 면이 있고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를 창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숭아나무를 볼품없고 맺힌 열매도 못났다고 한 것은 저의 시야가 좁아서 겉면만 보고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있는 만물은 모두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제가 못났다고 여겼던 복숭아나무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여전히 못난 그대로이고 주변의 잡초도 여전히 우거져 있어.’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였습니다. 즉 복숭아나무는 모양새가 “못났다” 해서 자신이 살아갈 “용기”를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해서 주변의 잡초를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잡초도 “지위가 낮다” 하여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각자의 사명을 모두 이행하고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여기든지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자기들이 존재하는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겨났다. 순식간에, 저마다 형태가 서로 다른 작은 생명이 흙 속에서 작은 머리를 한들한들 내밀면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한시도 참지 못해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이 세상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것들은 조물주가 베풀어 준 생명에 감사를 드리고 있고 그것들이 다 만물 중의 일원이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제각각의 생명을 바칠 것임을 이 세상에 알리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발함에 따라 땅 위에는 풀들이 파릇파릇하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각 종류의 채소가 생기 넘치게 자라나 흙을 뚫고 올라오며 산천, 평원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밀림이 울창하다…… 조금의 생기도 보이지 않던 벌거벗은 이 세계는 신속히 푸른 풀과 채소와 나무 등의 각종 식물에 덮여 푸른 빛깔이 차고 넘친다…… 공기 속에는 푸른 풀의 향기가 가득하고 흙의 향기가 풍기며 각종 식물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숨을 쉬기 시작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시작한다. 동시에 이 모든 식물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번식하는 생명 역정을 시작하고 그것들 제각각의 생명의 운행 궤적을 충실히 지키기 시작하고 만물 중에서의 그것들 제각각의 배역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모두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조물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며, 모두 조물주의 끊임없는 공급과 자양을 얻을 것이고 또한 영원히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기 위해 이 대지의 곳곳에서 꿋꿋이 살아갈 것이며, 그것들은 또 조물주가 그것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영원히 창현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시초에 이 세계를 위해 식물을 창조하는 기묘한 광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창조하는 그 순간부터 그것들에게 생명이 되풀이되는 궤적과 만물 중에서 맡아야 할 그것들 각자의 역할을 주셨습니다. 조물주의 명정으로 말미암아 이 법칙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전이되지 않았고 또한 사람의 애호에 따라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식물로써 그것들은 완강하게 곳곳에서 살고 자신의 존재로 조용하게 조물주의 권세와 능력을 창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묵묵히 조물주의 은택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이렇게 평범한 것 같지만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어느 누가 발견한 적이 있을까요? 이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는 저에게 사람됨의 도리를 알게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지식이 있든 없든 재주가 있든 없든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이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조물주의 안중에는 어떤 종류, 어떤 하나의 피조물이든지 모두 그것 의 특정된 사명이 있고 존재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조물주의 주재에 순응하고 조물주의 권세를 창현하기 위해 피조물의 직책을 잘 이행하여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할 뿐입니다.

믿음은 바로 힘이다

저는 당뇨에 걸린 지 16여 년이나 되는 환자입니다. 걸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많은 합병증까지 생겨 저는 또 백내장에 걸려 시력도 흐릿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을 금방 받아들였을 때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글도 쓸 수 있었지만 6개월도 안 되어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저는 소극적이 되고 믿음도 없어졌습니다. 언젠가 저는 집회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 집회입니다. 다음 집회에는 저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저는 안 믿겠습니다. 저의 눈이 제 구실을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볼 수가 없고 복음을 전할 줄도 모르지, 하나님께서 저같은 소경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차라리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일찌감치 하나님을 떠나는 게 낫겠습니다……” 저는 속사포를 쏘듯이 단숨에 말해 버렸습니다. 다들 서로 마주 보면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 했고, 열렬하던 집회는 즉시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비록 실정을 말했지만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고 눈물범벅이 되어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한 자매님이 저의 손을 잡고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우시지 말고 마음 진정시키고 우리 함께 노래를 부릅시다!”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시가 ≪실제 하나님은 묵묵히 사람을 구원한다≫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다들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도 성령님이 저의 몸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람의 전망과 운명을 옮겨 갔지만 모두 사람을 위해서이다. 어느 단계나 사람의 생존을 위하고 전 인류에게 땅에서 아름다운 귀숙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저는 크게 깨닫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치욕을 참으시고 또 친히 호랑이 굴에 들어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여전히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나는 어떠한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자그마한 병을 하나님께서도 꺼리시지 않는데, 내가 참을 수 없고 소극적이 되었으니 이것은 너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웠고 또한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굳게 세웠습니다. 비록 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귀가 밝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죽지 않고 더 살게 된다면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입니다. 2002년 8월의 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저에게 나가서 사역에 협력하라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병고에 시달린 저는 그날따라 머리가 어지러워 한밤중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저의 남편(형제님)이 제가 괴로워하고 말할 기력도 없고 진짜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저를 생각해서 말했습니다. “당신 몸이 이런데,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차라리 내가 가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말할까?” 이 말을 듣고 저는 엄격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세요? 정말 정신이 없네요, 당신 말처럼 일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오늘은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죠…… 하나님께서 ‘한가지 일이 임하여 네가 고통받아야 할 때 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고, 하나님께서 저의 믿음을 검증하실 때이니 오늘 반드시 가야 해요.” 그리고 나서 저는 필요한 소지품과 약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문을 나서자마자 머리가 무겁고 다리가 휘청거려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병도 당신의 수중에 있습니다. 어떠하든지 저는 당신의 지배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나서 잠시 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나가서 1주일 동안 협력하면서 한 알의 약도 먹지 않고 병이 다 나았습니다. 만일 이전 같으면 적어도 이틀 동안 링거를 맞아야 했고 또 이틀 동안 쉬어야만 천천히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믿음에 의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이번 협력을 통해 저는 비로소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라는 진정한 함의를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河南省 喜芝

어느 90년대 생의 변화

90년대 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혹시 하루 종일 사이버 세계에 빠져서 현실과 동떨어져 사는 청소년들의 모습인가요? 혹시 학교에서 짝을 이루고 다니는 젊은 커플들인가요? 또 혹시 밤새도록 클럽에 드나들며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춤추는 청소년들인가요? …… 대부분 사람들은 아마 더 이상 90년대 생들을 청춘의 생기가 넘치고 열정이 가득하며 활기차게 향상하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고 나약하고 무능하며 빈둥거리면서 먹고 마시고 노는 사람들의 대표로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먼저 여기 어느 90년대 생의 체험을 들어 보세요! 무슨 심리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셨고 게다가 도박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늘 룸메이트와 함께 술 한 박스를 몰래 숙소로 가져와서는 밤이 되면 도박을 하면서 술을 진탕 마셨는데 그것을 누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또 인터넷 게임과 채팅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는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수업 중에는 물론이고 길을 가면서, 밥을 먹으면서도 했고 심지어 꿈속에서조차도 했습니다. 설령 기진맥진할 정도로 해서 학교 책상에 엎드려 잔다 하더라도 저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친구가 많아지다 보니 저도 이 복잡한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여태껏 접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물들이 조금씩 저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비록 미래에 대해 많은 지향이 있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만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졸업하자마자 일을 하기 시작한 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친구의 요청에 의하여 처음으로 KTV에 갔습니다. 저는 알코올, 약물, 마음을 뒤흔드는 음악 소리를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것들을 해소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그런 곳에 빠지게 되었고 며칠에 한 번씩 친구들을 불러 진탕 놀다가 항상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건강이 점점 나빠졌지만 저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늘 유흥업소에 드나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위가 아팠고 담배를 피우며 밤까지 새다 보니 기침을 하면 피가 나왔습니다. 몸이 점점 약해지니 그제서야 반성을 해봤습니다. ‘여자애가 왜 이렇게까지 됐지? 이대로 나가다간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근데 이렇게 살지 않으면 또 어떻게 살지? 지난 몇 년 동안 대체 뭘 한 걸까?’ 순간 저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았고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제가 걸어야 할 길이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도 몰랐고 또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오랫동안 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갈수록 저를 방황하게 하고 무력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게 되었고 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번화하여 사람들이 보고 마음이 모두 거기에 끌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사기꾼들과 술법사들은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만약 네가 진보하려고 하지 않고 꿈이 없다면 이 죄악의 파도에 휩쓸려 갈 것이다.』 『전능자는 심히 고통 받는 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동시에 지각이 전혀 없는 이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가 매우 오래 기다려서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 한다, 너의 마음을 찾고 너의 영을 찾아 너에게 물과 양식을 주어 너를 소생케 하고 더는 목마르지 않게 하고 더는 굶주리지 않게 한다. 네가 지쳤다고 느낄 때, 네가 이 세상의 처량함을 느낄 때, 방황하지 말고 흐느끼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 순찰자가 수시로 너의 돌아옴을 포옹할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키면서 네가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너의 기억이 문득 회복되어 “네가 하나님 그리로부터 나왔는데 어느 때에 방향을 잃었는지, 어느 때에 길에서 혼미하였는지, 또 어느 때에 ‘아비’가 있게 되었는지를 알고 더욱이 전능자가 줄곧 그곳에서 지키면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오래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애타게 바라면서 답이 없는 하나의 회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지킴은 값으로 칠 수 없는데, 사람의 마음을 위하고 있고 사람의 영을 위하고 있다. 아마 이 지킴은 기한이 없을 것이고 또 아마 이 지킴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지금 너의 마음과 너의 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저의 마음을 위로해 주어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과 기대는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동시에 이 “향락 세계”의 사악한 사회 풍조는 모두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수단임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눈앞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사악한 사회 풍조가 우리의 심신을 얼마나 심하게 타락케 하는지를 모른 채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마구 짓밟도록 방임하면서 인류의 영혼을 삼키려는 사탄의 음모와 계략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이 지내 온 과정을 돌이켜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몇 해 동안 저는 이런 사악한 사회 풍조에 깊이 빠져 거기에 장단 맞춰서 춤을 추고 줄곧 사탄의 우롱과 참해를 받고 죄 속에서 살면서도 오히려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괴롭힘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그런 것들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때에 구원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의 결말이 어떠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이미 역사가 되어 저에게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인생에 대해 정확한 추구 목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는 이상과 기개 및 왕성하게 향상하는 기질이 없어서는 안 되며, 젊은이는 전망에 대해 낙담해서는 안 되고 생활에 대해 희망을 잃어서도 안 되고 미래에 대해 신심을 잃어서도 안 되며, 젊은이는 자신이 오늘 선택한 진리의 도에 대해 걸어갈 의지력이 있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룩해야 하며, 젊은이는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되고 허위와 불의를 품고 있어서도 안 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입장을 굳게 세워야 하고 자기 주견이 없이 시대 조류에 휩쓸려서는 안 되고 용감히 정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봉헌하고 전력을 다해 분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며, 젊은이는 마땅히 흑암 세력의 압제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있고 자신의 생존 의의를 바꾸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젊은이는 억울하게 받는 나쁜 대우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더욱더 솔직한 마음을 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정신도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는 사리를 분명히 가리는, 정의와 진리를 찾으려는 심지(心志)가 없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아름답고 선한 사물이어야 하며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얻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경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정성스러운 가르침은 저에게 무한한 동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더 이상 화려한 세상에 빠지거나 미련이 남아있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 길, 생명이고 저를 광명한 인생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사탄에게 괴롭힘 당해 자아를 잃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제가 방황하고 헤매고 있을 때 저를 깨워 주시고 하나님의 집으로 이끌어 주셨고 “물”과 “양식”으로 양육을 해 주셔서 저에게 빛과 희망을 보게 하였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 탓에 긍정적인 사물은 어떤 것이고 부정적인 사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분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짓밟힐 대로 짓밟히면서 타락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 말씀의 목양 하에서 정확한 인생관을 세우게 되었고 젊은이로서 마땅히 어떤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참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고자 하는 추구 목표가 생겼습니다. 동시에 세상의 시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겨 전처럼 세상 물정을 모른 채 사악한 조류를 좇으면서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착실하게 행동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벼랑 끝에서 구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가을 낙엽,
사람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모든 사람의 인생 역정은 갓난아기부터 시작되는데,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주변의 인·사·물도 부단히 바뀝니다. 우리는 자신의 두 손으로 운명을 바꾸려고 시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운명에 순응하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꿈꾸던 것을 이룰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인생을 체험하든, 나이가 들면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이모는 병원에 근무합니다. 병원에 가서 이모를 찾아뵐 때마다 병실을 지나게 되는데, 병상에는 약물로 겨우 연명하는 노인들이 누워 계십니다. 매번 무심결에 노인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저는 왠지 모르게 막연하고 뭔가 두려워하는 그 눈빛에 동정심이 생기게 됩니다. 노인들 옆에는 가족들이 분주히 드나들며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물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옷을 입혀주기도 하고 약을 먹이기도 합니다. 가족들은 온갖 방법으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기어가 일단 돌아가면, 그 누구도 역전 시킬 수 없습니다. 예전에 아래와 같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사 한 분이 만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녔지만, 병세가 호전되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투여하는 약이 날로 많아지면서 눈이 흐려져 물건이 잘 안 보이고, 다리도 저려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진단 결과 약물중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약물 과다 투여로 인해, 신장질환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 그 교사는 ‘가족들이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 난 차라리 죽는게 나아. 근데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는데, 왜 안 되지? 왜 죽음이 두렵지? 왜 이 세상을 떠나기가 두렵지?...’라는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마지막까지 운명과 싸울까요? 알고 보니 다 죽음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 아직 젊은 저는 늘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왜 죽음이 정말로 다가왔을 때, 담담하게 마주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 저는 드디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왜 현재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 죽음에 직면할 때 어떤 사람은 바지에 오줌을 쌀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들부들 떨 것이며, 어떤 사람은 혼절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심지어 소리 내어 통곡할 것인데, 이런 것은 절대로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야 사람이 돌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할 때 이런 난감한 표현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까닭은 주로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의 안배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깨달음이 없고 더욱이 진실한 순복도 없기 때문이며, 사람이 스스로 모든 것을 안배하고 장악하려고만 하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과 자신의 생사를 장악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쓰였습니다. 이 말을 묵상하면서, 죽음에 임했을 때의 사람들의 여러가지 표현들이 떠올랐는데, 마음속의 의혹이 점차 풀렸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조물주를 알지 못하고, 조물주의 주재와 안배에 대해 인식이 없으며, 더욱이 진실한 순복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어떤 배경에서 죽을지는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후 마음속에 각종 사탄의 독소가 가득 차서 더 이상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능력으로 인생을 바꾸려 하고 늘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아무 고통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고, 아무 아쉬움과 걱정도 없이 인생의 마지막 관문에 직면하고 싶어 한다면, 그 유일한 경로는 바로 아무 유감도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인간 세상을 떠날 때 아무 유감도 남기지 않을 않는 유일한 경로는 바로 조물주의 주재를 인식하고, 조물주의 권병을 인식하고, 조물주의 주재 아래에 순복하고, 조물주의 권병 아래에 순복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인류의 분쟁을 멀리하고 죄악을 멀리하고 사탄의 매임에서 떠나 욥처럼 조물주의 인도 아래에서, 축복 속에서 살 수 있고, 자유와 해방을 받으면서 살고, 가치 있고 의의 있게 살고, 떳떳하게 살 수 있으며, 욥처럼 조물주가 시련하고 거두어 가는 것에 순복할 수 있고, 조물주가 지배하고 안배하는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욥처럼 일생 동안 조물주를 경배하여 조물주의 칭찬을 받게 되고, 조물주가 친히 발한 음성을 듣게 되고, 조물주의 나타남도 보게 되며, 욥처럼 즐겁게 살다가 즐겁게 세상을 떠나고, 아무 고통도, 아무 걱정도, 아무 유감도 없게 되며, 욥처럼 빛 속에서 살고, 빛 속에서 인생의 각 관문을 넘기며, 빛 속에서 순조롭게 자신의 평생 길을 다 걸어가고 순조롭게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게 된다. 즉, 피조물로서 조물주의 주재를 경력하고 체험하고 인식하고 난 후에 빛 속에서 떠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조물주가 칭찬하는 피조된 인류로서 조물주의 곁을 지키게 된다.” 이 말을 통해, 저는 오직 조물주의 섭리와 주재에 대해 인식이 있고, 진실로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귀복해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은 기한이 차서 죽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르게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든 축복을 주시든, 그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했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주재를 믿고, 인정하고, 순복하기를 추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임했을 때, 그는 아무 걱정도 유감도 없었고, 자신의 결말을 걱정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그는 즐거웠고 죽음의 통제에서 벗어났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단어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 또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체험하든, 어쨌든 우리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정해주신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조물주의 섭리와 주재를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자신의 인생을 욥처럼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 책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이런 것을 진정 깨달을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자연히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할 것이고, 몸 이외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내려놓고 머지않아 임할 모든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순복하면서 조물주가 사람을 위해 안배해 놓은 인생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할 것이며, 무턱대고 거부하지 않고 무턱대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추천 동영상: 「천국의 꿈」

 

 

 

 

May isa pang pagbubunyag ng disposisyon ng Diyos dito: Sa mga mata ng Diyos, may hangganan ang Kanyang pasensiya sa katiwalian ng tao, sa karumihan, karahasan, at kasuwailan ng lahat ng laman. Ano ang Kanyang hangganan? Tulad ng sinabi ng Diyos: “At tiningnan ng Dios ang lupa, at, narito sumama; sapagka’t pinasama ng lahat ng tao ang kanilang paglakad sa ibabaw ng lupa.” Ano ang ibig sabihin ng pariralang “sapagka’t pinasama ng lahat ng tao ang kanilang paglakad sa ibabaw ng lupa.” Ito ay nangangahulugan na anumang nabubuhay, kasama na ang mga sumusunod sa Diyos, ang mga tumatawag sa pangalan ng Diyos, ang mga minsan ay naghandog ng mga sinunog na alay sa Diyos, ang mga nagsalita ng pagkilala sa Diyos at nagpuri pa sa Diyos—sa sandaling ang kanilang mga asal ay mapuno ng katiwalian at makaabot sa mga mata ng Diyos, kailangan Niyang lipulin sila. Iyan ang hangganan ng Diyos.Kaya hanggang saan nanatiling mapagpasensiya ang Diyos sa tao at sa katiwalian ng lahat ng laman? Hanggang sa lahat ng mga tao, maging mga sumusunod sa Diyos o hindi mananampalataya, ay hindi lumalakad sa tamang landas. Hanggang sa ang tao ay hindi lang tiwali ang moralidad at puno ng kasamaan, ngunit wala na ring naniniwalang may Diyos, lalo nang wala ang naniniwala na ang mundo ay pinaghaharian ng Diyos at makapagdadala ang Diyos ng liwanag at ng tamang landas. Hanggang sa ang tao ay nasuklam sa pag-iral ng Diyos at hindi pinayagang umiral ang Diyos. Sa sandaling umabot sa puntong ito ang katiwalian ng tao, mawawalan na ng pasensiya ang Diyos. Ano ang papalit rito? Ang pagdating ng poot ng Diyos at kaparusahan ng Diyos. Hindi ba isang bahagi iyon ng pagbubunyag ng disposisyon ng Diyos? Sa panahong ito, mayroon pa bang matuwid na tao sa mata ng Diyos? mula sa:" Ang Gawain ng Diyos, ang Disposisyon ng Diyos, at ang Diyos Mismo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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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搭上末班車》精彩片段:主再來是道成肉身應驗了聖經預言

 

《搭上末班車》精彩片段:主再來是道成肉身應驗了聖經預言

關於末世主如何再來,主耶穌說道:「你們也要預備,因為你們想不到的時候,人子就來了。」(路加福音12:40)「因為人子在他降臨的日子,好像閃電從天這邊一閃直照到天那邊。只是他必須先受許多苦,又被這世代棄絕。」(路加福音17:24-25)這些經文中提到「人子來」「人子降臨」,這話的內涵之意是什麼?如果再來是駕雲降臨,「受許多苦」「又被這世代棄絕」又怎麼理解呢?https://reurl.cc/M7dyy3

了解更多如何分辨神的聲音方面的真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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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人說:“聖經中所說的”審判“是指耶穌再來時在天上設立白色大桌案審判人的罪,而且是一剎那就把惡人與善人分開,所以根本用不著神再道成肉身用話語作審判的工作“。

答:有的人認為聖經中所說的“審判”是耶穌再來時在天上設立白色大桌案審判人的罪,而且是一剎那就把惡人與善人分開,這完全是人超然的觀念想像為什麼這樣說呢?因為審判工作是神經營工作中的一步工作,神作每步工作都是很實際,很現實的,都是根據人類的真實情形實實際際地作工,說話在人中間,讓人都能摸得著,看得見,都能經歷得到,體嘗得到,特別正常,特別實際,並不渺茫也不超然全能神說:“神是實際的神,他的一切作工也都是實際的,神所說的一切話都是實際的......“”神作工都是最實際的,都是讓人能夠摸得著的,是人能經歷到的,能達到的。“ “雖然說神察看人心肺腑,但仍是根據人的實際情形作的,並不渺茫也不超然。”“神作工正常,一點也不超然......”“作哪一步工作都是實實際際在作,不是像人想像的不動嘴,不動意念,想怎麼作就怎麼作......不是憑空作的,說話也是實實際際地在說,作工作也是一天天在作......“可見,神是實際的神,他的一切作工都是實際的,都是按著人類的實際情形一步一步地作,哪一步工作都是實實際際在作,說話也是實實際際地在說,並不像人想像的那樣不符合實際。我們知道,當初在亞當,夏娃被撒但引誘敗壞之後,神就沒有像人想像的直接行使權柄將撒但捆綁,毀滅,一下子把人從撒但的手中奪回來,而是針對人類的情形實實際際地用了長達六千年的時間,在人中間作了三步工作(即:律法時代的工作,恩典時代的工作與國度時代的工作),藉著這一步一步地實際作工來帶領人,拯救人,最終把人從撒但的手中徹底拯救出來,使全人類重新歸向神。就如,神作律法時代的工作,當神沒頒布律法之前,初生的人什麼也不懂,不知道該怎麼敬拜神,順服神,也不知道怎樣遵行神的法度,更不知道人與人之間該怎麼相處,但神並沒有一下子就很超然地讓人明白這些,而是實實際際地興起聖靈使用的人 - 摩西,藉著摩西來頒布誡命,律法,讓人知道該怎樣順服神,敬拜神,怎樣與人相處,很現實,很實際地把人所需要的東西加在人裡面。還有,神作恩典時代的工作,當神沒作救贖工作之前,人都守不住律法中的誡命,典章,活在了被律法定罪的危險之中,但神並沒有很超然地在天上說一句話,霎時就赦免人的罪,饒恕人的不義,將人從罪惡之中拯救出來,而是實實際際地道成肉身來在地上,親自上了十字架,用自己捨命流血的代價將人從撒但的手中贖買回來,赦免了人的罪,饒恕了人的不義。可見,神在哪個時代作工都不超然也不渺茫,都是實實際際地付代價去作,並不是像我們想像得那麼神乎其神,不切合實際。

神在末世作審判的工作時,同樣也是實實際際地道成肉身用話語來審判人,潔淨人,根據人的實際情形來審判揭示人,對付修理人,根據人的所作所行及本性實質來分別善惡,並不是在空中設一個白色的大桌案來審判人,剎那間將善人與惡人分開全能神說:“神作審判的工作不是三言兩語就道盡人的本性的,而是來作長期的揭露,對付,修理,這各種方式的揭露,對付與修理並不是用一般的語言能代替的,而是用人根本就沒有的真理來代替,這樣的方式才叫審判,這樣的審判才能將人折服,才能使人對神心服口服,而且對神有真正的認識。審判工作帶來的是人對神本來面目的了解,帶來的是人對悖逆真相的認識。審判工作使人對神的心意明白了許多,對神的工作宗旨明白了許多,對人所不能明白的奧秘理解了許多,而且也使人認識了知道了人的壞實質,敗壞根源,也使人發現了人的醜惡嘴臉。這些工作的果效都是審判工作帶來的,因為審判工作的實質其實就是神的真理,道路,生命向所有信他的人打開的工作。這工作就是神作的審判工作。“”對於審判人肉體敗壞的工作,只有肉身中的神最適合作,只有肉身中的神最有資格作。若是神的靈直接審判那就不能面面俱到,而且人也難以接受,因為靈不能與人面對面,就這一點就不能達到立竿見影的果效了,更不能讓人更透亮地看見神的不可觸犯的性情。只有在肉身中的神審判人類的敗壞才是徹底打敗撒但,同樣是有正常人性的人,在肉身中的神能直接審判人的不義,這是他本來就聖潔的標誌,也是他與眾不同的標誌,只有神能有資格,有條件審判人,因為他有真理,他有公義,所以他能審判人,沒真理,沒公義的人是不配審判別人的。是神的靈作這個工作那就不是戰勝撒但了,靈本來就比肉體凡胎高大,神的靈本來就是聖潔的,他本來就是勝過肉體的,靈直接作這個工作並不能審判人的全部悖逆,也不能顯明人的一切不義,因為審判工作也是藉著人對神的觀念而作的,而人對靈本來就沒有觀念,所以靈不能更好地顯明人的不義,更不能透徹地揭示人的不義。道成肉身的神是不認識他的所有人的仇敵,藉著審判人對他的觀念與抵擋就將人類的悖逆都揭示出來了,肉身作的工作比靈作的工作達到的果效更明顯。所以,審判全人類的不是靈直接作而是道成肉身的神來作工。“”若是神的靈直接向人說話,人就都順服在'聲音'之前了,不用說話揭示人就都仆倒了,就如保羅在大馬色的路上仆倒在光中一樣,若神仍那樣作,人永遠不能藉著話語的審判來認識自己的敗壞達到被拯救的目的。只有道成肉身才能將話語親自送到每個人的耳中,使那些有耳朵的人都聽見他的說話,都能接受他話語的審判工作,這樣才是話語達到的果效,不是靈的顯現來將人'嚇倒',藉著這樣實際而又超凡的工作才能夠將人深處那些隱藏了多少年的舊性情完全揭露出來,達到讓人都認識到,能夠有變化。這些都是道成肉身的實際的工作,是實實際際地說,實實際際地審判,而後達到話語審判人的果效,這才是道成肉身的權柄,是道成肉身的意義“。

從神的話中看到,神作審判的工作是藉著揭露人的敗壞,解剖人的言行,使人能對自己的敗壞實質,對神的性情都能有認識,從而達到被神潔淨,被神變化,同時也將善人,惡人分開,這樣,只有神實實際際地道成肉身來到人中間,才能使審判工作達到應有的果效。神若不道成肉身實實際際地作審判工作,神的實質原本是個靈,靈是公義聖潔的,不容污穢存留,見著污穢就擊殺,而人類被撒但敗壞六千年,已經邪惡污穢到一個地步,撒但毒素在人裡面深深紮根,每天所活出的都是污鬼的樣子,彎曲詭詐,爭名奪利,狂妄自大,邪惡虛浮......這樣若是用靈來審判人,整個人類都得被神靈擊殺,無人能存活下來,也無人能來在神面前接受神的審判;神若不是道成肉身實實際際地作審判工作,靈與屬肉體的人根本不能面對面,靈說話人根本聽不懂,也摸著神明確的心意,只能是猜測大概的意思,這樣靈來審判人就沒法達到面面俱到,立竿見影的審判人的果效,不能及時地,全面地揭示人的敗壞實質,也不能使人透亮地認識神不容人觸犯的公義性情;神若不是道成肉身實實際際地作審判工作,靈本來就比肉體凡胎高大,人對靈根本就沒有觀念,而且人在靈面前都感到恐懼戰兢,這樣人對神的一切觀念就不容易顯明出來,人身上根深蒂固的撒但本性也不會顯露出來,神就沒法針對人的觀念和人的敗壞實質準確地發表嚴厲的審判之語,也沒法透徹,深刻地審判人裡面的全部悖逆與不義,人也就沒法認識自己,恨惡自己,也沒法達到性情變化,蒙神拯救了;神若不是道成肉身實實際際地作審判工作,任何人在威嚴的靈面前都是特別恐懼,特別害怕,對靈作的審判工作都能相信,順服,誰也不敢抵擋,敢悖逆,這樣就沒法顯明出誰是真信,誰是假信,誰是順服神的人,誰是抵擋神的人了。所以只有神道成肉身實實際際地與人同在一個境地,神才能有效地涉及與他接觸的每一個人,才能將審判的話語親自送到每個人的耳中,使人都能聽得懂神嚴厲的審判之語,從而都能接受神審判的作工;只有神道成肉身來實實際際地與人生活在一起,神才能根據人撒但本性的流露隨時地向人發聲說話,長期地對付人,修理人,將人內心深處那些隱藏了多年的敗壞性情揭露出來,讓人能認識自己的本性實質,恨惡自己的撒但敗壞性情,從而能追求變化自己;只有神道成肉身實實際際地來到人的中間,人的觀念與悖逆才能被普通正常的肉身給顯明得淋漓盡致,神才能針對人的觀念抵擋來更實際地審判人;只有神道成肉身實實際際地來在地上,才能將人的實質顯明出來,才能捕捉人悖逆神,抵擋神,背叛神的事實,用人的所作所行將真信與假信,善人與惡人分開。由此可見,只有藉著道成肉身的神實實際際地說話,作工,實實際際地與人接觸,與人同生活,這才能達到真實地審判人的果效,才能將善人與惡人分開,因此神藉著道成肉身說話發聲的方式來審判人,實在是太有必要了!

其實,神能藉著道成肉身實實際際地說話發聲的方式來審判人,來實實際際地將善人與惡人分開,這也是因著神是公義的神,神作事向來都是公平合理,光明磊落的,也是讓人,讓撒但都能心服口服的,讓人不服氣的事,讓撒但抓把柄的工作神根本就不會作正如全能神說:“我不願誣陷你們其中的一個人,因為我作事一向都是公平合理,光明磊落......“”神不隨便棄絕一個人,他作的一切都讓人心服口服,人看不見的事,人不服氣的工作他都不作,是真信還是假信都由事實來驗證......“所以,神今天要審判人的悖逆,要將善人與惡人分開,就是用”神道成肉身發聲說話“這個事實來審判人,顯明人,捕捉人悖逆神,抵擋神,背叛神的事實,以此定人是真信還是假信,將善人與惡人分開,只有這樣作才會讓所有人服氣,才會讓撒但心服口服。如果是在天空設一個白色大桌案,用神靈的權柄剎那間審判人,將善人與惡人分開,並不是藉著“神道成肉身發聲說話”這個事實來顯明人,來讓人種種的觀念,抵擋暴露在光中,種種的悖逆,不義全部流露出來,那最終被定為“惡人”的人沒有看見事實就會不服氣,不會承認自己是個惡人,反而會說神定規的不公義,而撒但也會趁機抓把柄控告神,說神作事不公義,沒有公平合理。所以說,神要想審判人,將善人與惡人分開,務必得藉著神道成肉身說話發聲的方式來作,這樣作才會讓人心服口服,讓撒但也沒有任何把柄可抓。

全能神說:“審判的是人類抵擋神的實質,這個審判的工作就是末世的征服工作人所看見的道成肉身的神的作工,說話,就是以往人觀念中的末世白色大寶座前的審判的工作,現在道成肉身的神所作的工作也正是白色大寶座前的審判。今天道成肉身的神,就是末世審判全人類的神。......末世的工作是以道成肉身的身份出現來作工作的,那肉身的神就是白色大寶座前審判人的神,不管他是靈還是肉身,總之作審判工作的那就是末世要審判人類的神,這是根據他的作工而定的,並。不是根據外貌或其他幾方面確定的儘管人對這一說法存有觀念,但道成肉身的神審判,征服全人類這一事實是誰也否認不了的,不管如何評價,事實總歸是事實,誰也不能說'工作是神作的,但肉身不是神',這是錯謬的說法,因為這工作是非肉身的神以外的人能作到的。弟兄姊妹,末世道成肉身作審判工作的全能神就是聖經中所說的白色大寶座前審判人的神,也是來定人是善是惡的神,這是千真萬確的事實!願我們都能放下自己超然,渺茫的觀念想像,來面對如今實際神的實實際際的作工,相信並接受神道成肉身所作的話語的審判工作,在神的審判之中得著潔淨,得著變化,得著拯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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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神話《認識神是達到敬畏神遠離惡的途徑》選段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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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알게 되면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다

가난했던 탓에 어른이 되면 꼭 성공해서 무시당하지 않으며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 어린 시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운명을 바꿔 보겠다며 밤낮 가리지 않고 이를 악물고 일하던 젊은 시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중년이 되었지만 성공한 것 하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몸부림치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병상에 누워 지난 세월을 돌아보던 노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모르면 우리의 삶은 캄캄하고 고통스럽기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허무하고 막막하기만 할 것입니다.
이제 이런 비극을 끝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알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면, 우리의 삶은 평안과 기쁨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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